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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부터 1년을 24개의 절기로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음력 11월에 들어서는 동지를 기준으로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의 순서로 24 절기가 구성된다. 이 중 동지는 작은설이라고 불리며 크게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설날 떡국을 먹고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것처럼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과학적으로는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태양의 황경이 270도 위치에 있을 때가 그렇다. 24 절기 중에서는 대한과 소한 사이에 있고 대략 양력으로 12월 22일 경이라 음력으로 항상 11월에 들어있다.
동지의 기원
옛날 고대인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겨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로 삼고 동짓날을 생명력이 부활하는 날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풍습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흔히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옛 풍습에서 기원한 것이다.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어서면 중동지, 그믐께가 되면 노동지라고 하여 동짓달을 3가지로 구분하였다. 또한 동짓날에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생각했으며 따뜻하고 온화하면 다음 해에 질병도 많이 생기고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여겼다.
동짓날 풍습의 종류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끓여 먹었다. 현대까지도 이 풍습이 이어지고 있는데 팥을 곱게 고아 죽을 만들고 찹쌀로 만든 새알크기의 단자를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흔히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팥죽을 만든 후 제일 먼저 제사를 올리기 위해 조상의 신주를 봉안한 건축물인 사당에 팥죽을 올리고 집 안의 각 방과 장독대, 헛간 등 곳곳에 담아 놓은 후 팥죽이 식으면 식구들이 함께 모여 먹었다고 한다. 이는 팥죽에 음귀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신앙적인 뜻도 내포되어 있는데 집 안에 여러 곳에 놓음으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팥죽을 만들 때 쓰는 팥이 붉은 양색이라 악귀를 쫓을 때 널리 활용된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나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 속에 팥을 넣으면 질병이 없어지고 물이 맑아진다는 속설도 마찬가지다. 동짓날 팥죽을 사람이 드나드는 문 주변이나 대문 근처 벽에도 뿌렸는데 이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었다. 여기서 축귀란 잡귀를 쫓는 행위를 뜻한다. 이외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만들어먹었는데 모두 귀신을 쫓기 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풍습이다. 동지가 초승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았다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게 된 유래는 중국 육조시대의 후베이와 후난 지방의 풍속과 연중행사들을 기록한 책이었던 형초세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형초세시기에 따르면 중국의 공공씨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으면서 천연두를 맡는 신인 역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소 팥을 두려워했던지라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아내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팥죽 외에도 부적으로 악귀를 쫓기도 했는데, 뱀 '사'자를 적은 후 기둥이나 벽에 거꾸로 붙여놓아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도 있었다.
궁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조선시대 때 왕의 약을 제조하던 관서인 내의원에서 소의 다리를 푹 고아 각종 약초를 넣어 약으로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며 관상감에서는 새해 달력을 만들어 궁에 올리면 서적을 배포할 때 쓰던 어보인 동문지보라는 국가의 인장 '옥새'를 찍어 백관들에게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지를 기점으로 태양이 점점 길어지므로 동짓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던 의미에서 가졌던 풍습이며, 각 관리들은 서로서로 달력을 선물하였고 지방 수령들에게는 파란색 표지의 달력을 선물하였다.
제주목사는 귤을 진상하였는데 귤은 제주의 특산물이었으며(현재도 그렇지만), 귤을 올려 받은 궁은 조선시대의 역과 왕비가 모셔진 대묘에 이 귤을 올린 이후에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교통편이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제주도에서부터 귤을 들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임금이 음식을 내려주는 사찬을 제공하면서 공로를 인정해 주었고, 그 외에 베와 비단도 하사하였다.
동지팥죽의 생활민속적 내용
동지팥죽은 중국의 공공씨 자식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우리나라의 전래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 후기의 시문집인 목은집, 익재집 등에 동짓날이면 팥죽을 끓여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고려시대에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정착화되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동짓날 팥죽은 장독대나 대문에 뿌려 악귀를 쫓을 때에도 사용되었고 병이 났을 때 길에 뿌림으로써 재앙을 면하고자 할 때도 활용되었다. 또한 이사를 하거나 새로 집을 지었을 때에도 팥죽을 끓인 후 집의 안과 밖 곳곳에 뿌렸다고 한다. 또한 이때 끓인 팥죽은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여름 복날에 삼계탕이 아닌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도 있었으며 겨울철 별미음식으로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에 행인들의 왕래가 많던 길목이나 주막에는 팥죽을 파는 집들이 있어 음식으로도 널리 보급되었다. 상을 당했을 때에는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들이 팥죽 또는 녹두죽을 쑤어 보내는 풍습도 있었다.
[내용 출처: 동지팥죽, 팥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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